이제 설이 지나고 봄의 문턱에 다가온 이맘때면 20여전 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할머니는 당시 92세의 고령으로 거동을 잘 못하시고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당시 대전의 모보건지소에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고 있었죠. 저는 진통제를 처방받아 자주 주사를 놔드리곤 해서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령으로 처지고 주름진 얼굴에, 힘에 겨워하시는 모습이었지만 돌아가신 후 오히려 얼굴이 편안해지시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필자는 어느 덫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곳 가톨릭대학 대전성모병원에 근무한지 16년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제가 딱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처진 눈 주변 수술, 코 재수술 등이 제 주된 수술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종합병원이라 개인병원에서 다루기 힘든 고령 환자들이나 성형 실패로 재수술을 희망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2년 전 이맘때 겨울이 끝나가는 길목에 94세의 할머니가 따님과 함께 제 외래를 찾았습니다. 할머니가 제 외래를 찾은 목적은 고령으로 눈 주변의 처짐과 눈두덩을 개선시키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간혹 80대의 환자들이 같은 목적으로 제 외래를 찾아 수술을 사례는 있었지만 94세란 나이는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같이 방문한 따님도 나이가 60은 넘어 보이는데 따님이 아니라 할머니가 대상이라니! 그것도 아파서 치료목적으로 오신 게 아니라 미용수술을 목적으로 오셨다니 당황할 수 밖에요. 내심 저는 할머니가 수술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고자 마음먹고 하나씩 문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문진을 하다 보니 할머니는 그 흔한 고혈압, 당뇨도 없으시고 병력도 깨끗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94세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곱고 정정하셨습니다. 비록 부분마취로 진행되어 수술 전 검사도 필요 없지만 수술시간이 제법 걸리고 환자가 잘 견딜지 걱정이 되어 수술보다는 보톡스나 필러 같은 간단한 시술을 권유하였지만 할머니는 수술을 고집하셨고 결국 하안검은 하지 않고 상안검 수술만 하게 되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할머니는 잘 참으셨고 수술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무사히 마쳤습니다. 수술 후 제 시기에 실밥도 제거하고 결과도 만족스러워 몇 차례 외래에서 경과관찰하고 이제는 제 외래를 찾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제가 왜 그리 꺼렸을까 싶습니다. 할머니도 한 여성으로써 젊게 살고 싶으셨을 텐데...나이를 핑계로 원하시는 것을 다 해드리지 못한 게 죄송스럽습니다. 지금은 할머니가 어떻게 살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건강하고 예쁜 삶을 누리시길 고대해봅니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셔요!